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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리즘

어떤 책에서 데려온 글귀들은

그 책, 그 위치에서 정확히 아름답고 영롱한 빛을 발하는데

일기장 한 귀퉁이에 적어놓으면

그 원래의 색과 뜻을 맥락없이 옮겨놓은 것 밖에는 되지 않는

한계가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적는다.

아름다운 글의 파편을.

 

043

벌거벗은 자신을 쓰라.

추방된 상태의, 피투성이인.

 

-데니스 존슨

 

 

 *           *         *          *           *

사람이 살면서 기쁜 일은 말할 데가 많다.

그렇지만 슬픈 일은 터놓을 마땅한 장이 없다.

복잡한 서사와 감정이 중첩되어 몇 마디 말로 설명하기 어렵고 말하고나도 영 개운치 않다.

자기 슬픔을 내보이면 약점이 되기도 한다.

이해 관계로 얽힌 경쟁 사회에서 슬픔 말하기는 금기다.

슬픔은 '말하는 법'을 배우고

슬픔을 '말해도 괜찮다'는 용기를 준다.

 

슬픈 책을 읽고 슬픈 일을 꺼내 슬픈 글로 쓰면

슬픈 채로 산다. 살아갈 수 있다.

왜 슬픈 책을 읽느냐는 항의는, 나는 슬프다는 인정이고,

슬픈 사람은 할말이 많게 마련이며,

거기서부터 글쓰기는 시작된다.

 

 

글을 쓰지 않고도 살 수 있을거라 믿는다면,

글을 쓰지 마라.

-라이너 마리아 릴케

 

그렇다. 글을 쓰지 않고, 나는 살아갈 수 없다. 살아낼 수가 없다.

 

퇴고는 자신의 글로부터 유체이탈하여

자신의 글에 대한

최초의 독자가 되어보는 경험이다.

-정여울

 

퇴고의 시간은 피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