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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4_에로스 by <향연>

아름다움과 에로스 //

육체의 유한성을 넘어서려는 인간에게 불멸의 길을 열어 주는 존재가 바로 에로스다.

에로스는 육체나 영혼의 자식을 생산하게 함으로써 인간을 불멸케 한다.

이때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운 육체를 보라.

생산의 욕구가 샘솟는다.

아름다운 영혼을 만나 보라. 

그 영혼을 흠모해 본받고 싶어진다.

이렇듯 생산은 아름다움 속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

결국 인간은 자신이 매혹되어 좋아하는 것을 영원히 갖기 위해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것이다.

 

불멸에 이르는 두 가지 방식//

지상의 모든 존재는 유한하다.

그래서 인간은 물론 모든 생명체는 자손을 통해 유한함을 극복하려 한다.

만일 이런 욕구가 없다면 대가 끊기고 만다.

그래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의 본성상 생명체는 영원히 존재하려고 발버둥 친다.

유한한 인간은 육체적으로는 생식을 통해 그리고 정신적으로는 창조를 통해 불멸하게 되는데

이때 인간을 이끌어 주는 것이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움은 에로스를 사로잡아 옛것 대신 새것을 남기며 인간을 영원히 존재하게 해 준다.

 

궁극의 아름다움과 사랑에 도달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먼저 육체의 아름다움에 눈뜨면서 아름다움과 사랑을 알게 된다.

하지만 플라톤은 충고한다.

여기서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육체의 아름다움을 넘어 영혼의 아름다움을 깨달아야 한다고.

그래야 아름답지 않은 몸도 아름다운 영혼을 만나 사랑하게 된다.

아름다움을 만나면서 특정한 것에 대한 사랑에서 벗어나

아름다움이란 큰 바다로 흘러들어, 마침내 아름다운 자체를 알아야 한다.

진정한 아름다움을 본 자는 개별적으로 흩어져 있는 사소한 아름다움에 얽매이지 않으며

삶의 가치를 깨달아 영원한 생을 얻게 된다.

 

플라톤에게 중요한 것은 당연히 영혼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신적인 아름다움이었지만,

그렇다고 그가 육체의 아름다움이나 사랑을 경멸한 것은 아니다.

플라톤이 말한 사랑이란 육체적 사랑에서 시작하더라도 그 안에만 갇혀 있지 않고,

영혼의 사랑을 찬미하지만 육체의 사랑을 결코 가벼이 보지 않는다.

애초부터 육체 없는 사랑은 공허하고 영혼 없는 사랑은 맹목일 뿐.

유한한 인간에게 불멸의 가능성을 심어 준 것은 바로 사랑이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근원적인 질문을 통해 육체와 영혼을 미학적으로 완성시키는 그 힘을 플라톤은 "사랑"이라 정의했다.

사랑이란 스스로 자신의 주인이 되어 온전히 자기를 배려하는 삶의 방식이라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