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523_운현궁에노을지다_미.친.연.극. (평점:★★★★★ / ※스크롤 압박 및 스포 주의)
6월 1일이 얼마 남지않았습니다. 빨리 서두르십시오...
이미 역사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는 듯하여
미리 내용을 알고가면 재미가 없을까봐 일부러 전혀 사전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갔다.
"운현궁"이라는 제목때문에 나는 제일 먼저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사도세자의 이야기가 아닐까?"는 추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조선 말, 천하를 주름잡던 흥선대원군이 이 극의 주인공이다.
사극을 대학로에서 보는 건 또 처음이었지만, 정말 만족했다.
티브이 브라운관에서보다 더 생동감있는 연기로 눈앞에 펼쳐지는 연기를 믿을 수가 없었다.
이런 신세계를 내가 미처 몰랐다니!!!
여기의 주인공들은 말할 것도 없고,
조연으로 나오는 분들도 기가 막혔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 Top3
먼저,
흥선대원군의 형의 역할 및 다른 배역을 맡은 웃음소리가 아주 인상깊었던 배우분이셨다.
연세가 꽤 있으신 듯했지만, (분장 탓인지)
주름이 아주 곱게 웃는 상으로 되어 있어서
그 분의 얼굴을 보고, 그 웃음소리를 듣는 순간 마음이 탁 트이는 듯 하였다.
아아, 성함을 모르지만, 손이라도 한번 잡아보고, 싸인이라도 한 장 받아올걸. 아쉽다. 아쉽다...
두번째로는
다리를 다친 흥선대원군을 공격하려다 되려 당하는 도둑역할을 하신 배우!
말하는 모습, 행동, 어설프게 팔이 꺽여 아야아야아야 하는데 웃음이 터져나올 정도로 귀여웠다.
자기 자신을 내려놓고, 캐릭터에 충실한 모습이셔서 정말 좋았다.
세번째로는
흥선대원군의 부인 역할을 하신 배우!
음성이 아주 곱고, 자태와 맵시도 우아하시고.
아주 다정하고, 기품있으신 중년부인의 연기를 맛깔스럽게 해내셨다.
다른 배우들도 좋으셨지만, 배우 소개는 이쯤하고~~
공연장은 내 생각보다 작았다.
사극 뮤지컬(?)을 기대하고 갔던 지라,
예술의 회관 오페라 + 명성황후 등의 큼지막한 무대를 생각하고 갔는데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그 무대 장악력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오페라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극이, 이토록 아름다운 것이었나.
이전에 readers를 보면서, 그 시리아적인 이미지에 감탄했다면
이번에는 한국문화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했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한국=한복"이라는 식상한 공식에서 탈피하여
시대적 상황, 한복, 말투 등의 삼박자가 어우러지니 아주 아름다운 소리를 냈다.
배우들의 음성은 정갈하였다.
토씨하나하나까지 세세하게 잘 들렸고, 더 빠르거나 느린 것이 없었다.
호흡이 아주 평안하고 안정되어 있었다. 떨림이나 굴곡이 없었다.
아주 정제되어 있는 "제호"의 맛이 난다 해도 과찬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서 보아야 할 것은 시작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나오는 "빨간 수건"이다.
첫장면, 선왕이 승하하고 나서부터 의자에 머물러 있던 그것은,
흥선대원군, 고종, 명성황후와 함께 한다.
나는 그것을 권력, 혹은 권력에 대한 욕심이나 권력에 대해 치루어야할 대가 등으로 해석하였는데
그것 이상의 더 많은 상징을 내포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여기에서 또 기막힌 것은
흥선대원군의 또 다른 이면인 그림자들 2, 의문의 사내이다.
이들은 흥선대원군의 무의식적 산물이다.
이들은 흥선대원군의 한을 역할놀이를 통해 풀어주기도 하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수수께끼 같기도 하고, 알듯말듯한 그들의 정체가
흥선대원군의 그림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아하!"하고 무릎이 탁 쳐졌다.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구나!
흥선대원군 내면의 갈등과 노여움, 한과 답답함, 그리고 자기합리화...
인간이 언제나 나아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과거의 자신이, 처음했던 다짐이,
현재나 미래의 나보다, 이미 익숙해지고 지루해진 숙련됨보다
더욱 나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연극의 대본, 정말 명작이다!
사실 이 대본의 명대사를 한 줄 쓰고 싶었지만,
그러질 못했다. 이 명대사가 그냥 명대사가 아니라,
대화속에서 이루어지는, 그런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무대의 오른쪽에는 하얀 천에 몇몇의 대사가 적혀있다.
노을지는 운현궁의 결말을 암시하듯...
다만, 흥선대원군의 일생과 그 시대적 배경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어야
이 연극을 더욱 즐길 수 있다.
배우의 연기, 그 연기가 진가를 발휘하게 한 연출, 그리고 그 뿌리가 되는 대본.
오늘 참으로 명작을 감상하였도다!!
이 좋은 공연에 생각만큼 많은 후기가 남겨져 있지 않아
미숙한 글 하나 더 보태어 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